고정된 세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한 가지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건 어제의 가치다. 오늘의 세계는 모두를 위한 평등, 제각기 다른 개인을 포괄한다.

모두의 세계

오랫동안 굳어진 영역 간 경계가 새로운 세대의 손에서 흐려지고 있다. 남성과 여성, 직업과 취미, 디지털과 아날로그같이 나란히 놓으면 양극을 띠던 개념이 구분의 의미를 잃기 시작했다. 성별, 직업, 나이로 개인을 규정하지 않는 태도가 대세를 이룬다. 경계가 흐려진 세계를 제각기 다른 개인이 다채롭게 채우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멋은 신념을 사방에 드러내는 것이고, 격식을 허물고 다양한 가능성을 창조하는 것이다. 최근 유틸리티 룩이 누린 인기의 기반엔 ‘의복의 목적은 그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입는 사람의 삶을 끌어안는 것’이란 발상이 있다. 젠더리스 트렌드도 빼놓을 수 없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남성, 넉넉한 외투를 걸친 여성이 런웨이를 걷는 일이 환영받는 시대다. 복장과 함께 직업 역시 개인의 타이틀 자리를 내려놓았다. 여러 직업을 동시에 갖거나 직업보다 취미에 더 전문성을 지닌 사람이 늘고 있다. 세계는 이분법적 시각과 조금씩 멀어지는 중이다.

중첩과 혼합

서로 다른 세계가 경계를 넘어 포개어질 때 제3의 세계가 솟아나기도 한다. 섬세한 감도를 추구하는 아날로그와 효율로 대변되는 디지털이 대표적인 예다. 오늘 밀레니얼 세대가 가장 열광하는 소셜 미디어 인스타그램을 두고 누군가는 그 중심에 아날로그 원칙이 있다고 말한다. “흐릿한 이미지, 채도 높은 필터, 계산되지 않은 구도, 심지어는 사진을 공유하는 것까지 스마트폰 사진(특히 인스타그램)의 문법은 스냅용 필름카메라의 원칙을 교과서처럼 따르고 있다.”₁ 각 세계의 장점을 취하면서 넘나들 때 익숙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₁ The Revenge of Analog: Real Things and Why They Matter, David Sax, Hachette UK

지금 세계는 개인을 주목한다.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는 이들은 논의되지 않던 일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가 하면, 직접 미디어가 되어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모두가 미디어가 된다

요즘 사람들은 전통 미디어보다 개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자신의 이야기를 소탈하게 들려주며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인물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것이다. 타인에게 영향을 끼친다 하여 ‘인플루언서’라 불리는 이들의 힘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특정 제품을 찰떡같이 소개해 ‘품절 대란’을 부르는 건 물론, 긍정적인 메시지로 사회에 힘을 불어넣는다.

일흔 넘어 소셜 미디어 스타가 된 박막례 할머니(Korea Grandma)는 ‘인생의 기회는 어떤 방식으로 찾아올지 모른다’는 진실을 삶으로 증명하며 세상에 강렬한 메시지를 퍼뜨린 예다. 그의 일상을 담은 채널의 구독자 수는 지금까지 90만을 훌쩍 넘겼다. 유튜브 CEO와 구글 CEO가 그의 채널을 ‘가장 영감을 주는 채널’로 꼽으며 만남을 요청하기도 했다. 최근 자신의 일대기를 담은 책을 출간한 그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전했다. “스스로를 모델처럼 만들려고 하지 마. 유행하는 패션 다 따라해도 되고, 아니면 완전히 네 식대로 입어버려. 외계인마냥.”₂

₂ YouTube Sensation “Korea Grandma” on Why She’s Loved Shopping Since the Day She Was Born, Vogue

자신을 빛내는 삶

내가 행한 일이 곧 내가 되는 시대다.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표현하는 퍼스널 브랜딩을 위해, 기록이 중요해지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회사 안팎에서 진행한 작업을 공유하거나 평소 영감을 주는 것들, 관심 분야에 대한 견해를 꾸준히 기록하고 드러낸다. 취미 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에 글과 사진을 올리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을 내보인다. 세상이 나를 얼마만큼 주목하는지 보여주는 척도인 팔로워 수가 곧 경쟁력인 지금, 취향은 사람을 모을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대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직접 팔을 걷어붙여야 하며, 그러기 위해 나만의 방식을 탐구해야 한다. 지금 나를 빛내는 것은 내 두 손이다.

대의에 가치를 두자는 흐름이 분야를 넘나들고 거세게 퍼진다. 일례로 환경을 보호하자는 유구한 주장이 지금만큼 중요한 때가 있었나. 지금 세계는 더 나은 곳을 향한다.

세계라는 대의

미국 CNN 방송은 2050년이 되면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을 것₃이라고 전망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열망이 강한 밀레니얼 세대는 이 사안에 책임 의식을 가진다. 이제 환경 문제는 누군가의 특정 ‘이념’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미래’가 달린 문제로 떠올랐고, 이 행성을 함께 사는 사람들의 자발적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고 있다.

₃ The amount of plastic in the ocean is a lot worse than we thought, study says, CNN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소비 패턴이다. 같은 물건을 사더라도 더 예쁘거나, 더 싼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가치가 담긴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늘었다. 미국의 한 의류 브랜드는 환경친화적 소재, 윤리적 공정 과정을 적극적으로 알려 밀레니얼 세대의 큰 지지를 얻고 있다. 식물성 원료만을 고집하는 코스메틱 브랜드, 윤리적으로 재배한 식재료만을 사용하는 레스토랑 등도 같은 흐름 아래에 있다.

생활 패턴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들은 이제 일상적으로 환경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매년 3월 마지막 주 토요일이면 전 세계가 지구를 위해 한 시간 전등을 끄는 어스 아워(Earth Hour)가 열린다. ‘픽업’과 ‘조깅’의 합성어로 운동과 길바닥에 버려진 쓰레기 수거를 겸하는 활동인 플로깅(plogging) 역시 세계 각국에 퍼져나가는 중이다. 오늘, 우리 모두가 편의보다 가치를, 나보다는 세계의 지속을 추구하는 때다.